연 이자율 3만6500%라는 숫자를 들어 보신 적 있나요? 며칠 전 검거된 불법 대부업자들이 취약계층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적용한 최고금리예요. 이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인 저신용자에게 접근해 고금리의 이자를 수취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 법이 인정하는 최고금리는 연 20%예요. 대부업체든, 개인이든 돈을 빌려주면서 연 20%이상의 이자를 요구할 수 없게 되어있어요. 그러나 법정 최고금리보다 수백배, 수천배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불법 대부업이 널려 있습니다.
‘취약계층’ 타깃 삼아 먼저 접근하는 불법사채
불법 대부업자들은 주로 돈이 절실한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합니다. 인터넷에서 대출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접촉하거나, 금융사나 정식 대부업체에서 대출상담을 받았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불법적으로 얻어내 먼저 연락을 취해요. 그리고 소액을 빌려주면서 공증비, 선이자 등 각종 비용을 먼저 받고, 짧은 기간 내에 갚게 하는 수법을 써요. 50만원을 빌려주면서 5만원의 공증비를 떼고 45만원만 주고, 다음주까지 90만원을 갚으라는 식이죠. 50만원을 빌렸는데 1주일 이자가 40만원이라는 건 금리가 연 4000% 이상이라는 얘기인데요, 소액을 빌려주기 때문에 법정 최고금리를 어마어마하게 뛰어넘었다는 점을 차주들이 잘 느끼지 못하고 급한 마음에 대출을 받게 됩니다.
‘지인추심’, ‘성착취 추심’ 등 비대면으로도 협박
불법 대부업자들이 어떻게 돈을 받아낼까요? 가족이나 친구, 직장 동료 등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겠다고 하거나, 실제로 알려서 주변인에게 돈을 대신 갚으라고 하는 ‘지인추심’을 해요. 채무자의 나체 사진을 요구한 뒤 연체하면 지인들에게 퍼뜨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하고요, 아이 사진을 요구하고 뒤 아이를 해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합니다.
갓 태어난 아이의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돈을 빌린 피해자에게 불법 대부업자는 ‘아이가 태어난 게 사실이라면 추심을 미뤄주겠다’고 하며 사진을 받아낸 뒤, 이를 이용해 협박했다. 출처:강원경찰청, 동아일보
대부업 등록제 도입했으나, “식당 차리는 것보다 쉽다”
악랄한 불법 대부업을 뿌리뽑기 위해20여년 전부터 대부업 등록제를 도입하고 교육 이수 의무 등을 부과했지만,여전히 불법 대부업체들이 판을 치고 있어요. 규제가 효과가 없었다는 얘기죠. 대부업체 설립 시 자본금이 1000만원 있어야 한다는 요건이 있지만 등록할 때 한 번만 증명하면 되고, 이후 출금해도 등록이 취소되지 않아요. 그래서 1000만원을 계속 입출금하면서 대부업체를 여러 개 만들 수 있어요. 고정 사업장을 갖춰야 한다는 요건도 있지만 어차피 등록 절차 중에 현장실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페이퍼컴퍼니를 등록해도 적발될 가능성이 낮아요. 공유오피스에 주소만 올려두고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식으로 운영하면 월세가 1만원대라고 합니다. ‘한국에선 대부업 등록이 식당을 차리는 것보다 쉽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죠.
소액만 빌려줘도 하루 수익이 1억 4천... 불법 대부업은 ‘돈이 된다’
불법 대부업이 계속 ‘돈이 된다’는 것도 불법 사채 문제가 줄어들지 않는 중요한 원인입니다. 현행법은 불법 대부업을 운영하다 당국에 적발되어 처벌을 받더라도 채무자에게 빌려준 원금과 법정이자 20%는 돌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어요. ‘걸리면 중박, 안 걸리면 대박’이니 불법 대부업을 운영할 유인이 있죠. 대부업법 위반에 따른 가장 높은 벌금액도 5000만원밖에 안 돼요. 범죄수익의 최고 10배까지 벌금을 물리는 특정경제범죄법이 불법사채에는 적용되지 않거든요.
경찰에 검거된 한 불법대부업자는 불법사채 수익으로 초고가 외제차 7대를 굴리고, 월세 1800만원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호화생활을 누렸다. 범죄수익은 300억원으로 추정되지만 법원으로부터 추징이 명령된 돈은 6억 여원에 그쳤다. 출처: 강원경찰청, 동아일보
불법대부업 철퇴 법안들, ‘과도하다’는 이유로 통과 못했다
이런 문제가 오래 전부터 지적되었고, 지난 국회에서 관련 법안도 발의되었지만 변화가 일어나지 못했어요. 20대 국회에서는 미등록 대부업의 최고 형량과 벌금액을 올리는 법안이 발의되었는데요, ‘미등록 은행·보험 영업 처벌에 비해 처벌수위가 과도하다’는 이유로 폐기되었어요. 21대 국회에서도 연 40%가 넘어가는 불법 대출은 원금까지 갚지 않아도 되게 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사인 간 계약을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폐기됐어요.
이번 국회에선 꼭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야 해요. 지난 9일 불법사금융업자와의 이자 계약을 전면 무효로 하는 ‘불법 사금융 퇴출법’이 발의됐는데요, 이 법안은 등록된 대부업자라도 법정 최고 이자율을 초과하는 고금리 이자를 수취할 경우 이자약정이 무효가 되도록 했어요. 앞으로 불법 사금융 문제를 제어할 다른 법안들도 계속 발의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악랄한 불법사채 계약은 아예 무효로 하는 제도적 변화 필요
야쿠자의 불법사채로 골머리를 앓았던 일본에서는 2008년 “불법사채는 위법한 계약이기 때문에 원금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어요. ‘불법사채를 하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선례가 생기면서 불법 대부업의 리스크가 커졌고 불법 사채업계가 쪼그라들었죠. 우리도 악랄한 불법 대부업을 뿌리 뽑으려면 이자 뿐만 아니라 원금까지 무효로 할 수 있는 제도적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뉴스1. 24-07-10. '연리 3만6500%' 살인금리로 서민 등골 뺀 불법 사채업자들. 세계일보. 24-07-10. 걸려도 중박’이라는 사채업자, 이자 못 받게 하는 법안 발의됐다. 동아일보. 24-06-26. “불법사채 갚지말라” 대법 판결에 사채시장 쪼그라든 日. 동아일보. 24-06-26. 개인수익 300억, 슈퍼카 7대 굴렸는데… 법원은 “37억만 불법”. 동아일보. 24-06-28. 대부 플랫폼 감독 강화… ‘불법사채 원금 환수’ 추진. 동아일보. 24-06-27. 韓, ‘잔액 1000만원’이면 대부업 등록… ‘불법’ 걸려도 원리금 보장. 동아일보. 24-06-25. 휴대전화 속 ‘年4000% 이자’ 업체 찾아가보니 1평짜리 ‘유령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