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9일 서울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의 전기실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가 감전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한 달 뒤 7월 17일, 서울지하철 6호선 삼각지역에서는 배선 작업을 하던 용역업체 소속 근로자가 또다시 감전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같은 날 서울지하철 신분당선 양재역에선 소방 안전 작업에 나선 근로자가 숨을 거뒀습니다. 사망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보시다시피 최근 2개월간 서울지하철 역사에서 작업 도중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만 세 건이나 발생했습니다. 어째서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는 걸까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규정
서울교통공사(이하 서교공) 노동조합은 지하철 작업장에서 일어나는 안전사고가 예견된 불행이라고 말합니다. 서교공의 내부 규정(전기작업안전 내규)을 보면, ‘고압·특별고압 작업 및 위험이 예상되는 전기 작업은 반드시 2인 이상 한 조가 돼 작업에 임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6월 발생한 연신내역 감전사고 당시 ‘2인1조’ 작업 규정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과도한 업무 부담과 촉박한 작업 시간 탓입니다.
연신내역 설비 작업 당시에는 ‘2인1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과도한 업무 부담과 인력 부족 탓이다.사진: 연합뉴스
형식적인 안전 점검
7월 발생한 삼각지역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은 부실한 안전 점검이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4조에 따르면 도급사인 서울교통공사는 시공사, 감리사와 함께 지하철 작업장의 안전 상태를 확인할 의무가 있어요. 실제로 사고 발생 전 서교공은 안전보건 점검을 실시한 이력이 있습니다. 점검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고요.
…작업장의 조명은 충분하며, 전기설비의 절연·접지상태가 양호하다.
하지만 점검표의 내용과 달리 실제 공사 현장에 설치된 조명은 조도 불량으로 어두운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설비 공사 전 조명을 증설해야 했고요. 삼각지역 근로자는 추가 조명을 설치하던 중 변고를 당했습니다. 만약 안전보건 점검이 정확히 이뤄졌다면, 근로자는 조명 설치 작업을 할 필요가 없었을 거예요. 서교공의 안전 점검이 요식 행위에 그치는 바람에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고가 발생한 거죠.
앞에선 “대책 마련” 약속, 뒤에선 “사고는 노동자 부주의 탓”
잇단 안전사고에 서교공은 “안전관리체계를 전면 재수립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각 본부별로 배치됐던 안전관리 인력 가운데 10명을 선발해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하고, ‘안전 총괄 본부’를 안전 관련 권한•책임의 컨트롤타워로 둔다는 게 골자입니다. 또, 안전감찰 전담조직을 만들어서 안전업무 위반 행위를 적발한 뒤 경고•징계를 내릴 계획이라고 해요.
서교공 노조는 사측이 안전사고 책임을 면피하고 있다며 비판한다. 사진: 공공운수노조
그러나 서교공 노조의 반응은 냉소적입니다. 그간의 안전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 먼저인데, 사측은 이런 논의를 외면하고 실효성 없는 대책만 세우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노조는 공사 측이 사고 책임에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데 여념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 대형 로펌을 선임해서 “사망한 근로자가 무리하게 작업했다”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는 거예요.
지하철 정비 기지 근로자 ‘희귀암’ 발병 속출
서교공의 안전불감증과 무책임함은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입니다. 해마다 발생하는 안전사고에는 ‘희귀암 발병’이란 충격적인 사건도 포함돼 있어요. 서교공에 소속된 지하철 정비 노동자 800여명 중 7명이 혈액암을 앓고 있거나 앓았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중에서도 ‘비호지킨 림프종’이라는 혈액암이 가장 많았는데, 전체 암 발병 건수의 2%에 불과한 희귀 질병이라고 해요.
서교공 소속 지하철 정비 노동자 800여명 중 7명에게서 혈액암이 발병됐다. 출처: MBC <스트레이트> 유튜브 갈무리
혈액암에 걸린 근로자들은 차량 도장, 세척 작업을 장기간 수행하면서 벤젠을 포함한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비슷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계속해서 동일한 질병에 걸렸는데, 이를 방지하는 장치는 없었던 걸까요?
반복되는 맹탕 안전 점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작업환경측정제도’란 것이 있습니다. 근로자들이 유해화학물질에 얼마나 노출되는지, 1년에 두 번씩 사업주들이 작업 환경을 점검하도록 하는 건데요. 서교공은 이런 중요한 점검을 ‘날림’으로 진행했어요. 안전 점검이 있는 날 미리 환기를 시켜서 작업장의 유해물질 검출 수치가 낮게 나오도록 유도하는 식이죠. 그 결과, 혈액암과 유관한 벤젠 검출 수치가 기준치를 초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차량 정비 기지 근로자들은 상시적으로 위험한 환경에 노출돼 있다. 출처: MBC <스트레이트> 유튜브 갈무리
겉핥기식 대책 아닌 근본적인 해결책 필요
정비 노동자들의 혈액암 발병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서교공은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한 ‘혈액암 조사위원회’를 꾸렸습니다.차량 기지 내 작업과 혈액암 발병 간 인과관계를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해요. 조사위는 정확한 실태 조사를 통해 불의의 사고를 방지하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서교공의 숱한 전례처럼 부실하고 허술한 땜질식 처방을 반복해선 안 되니까요. 서교공과 조사위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지, 제대로 할 일을 하는 지 우리 모두가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