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 날씨 말입니다. 지난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장맛비가 쏟아지면서 호우주의보가 내려졌습니다. 반면 전라도와 제주도 등 남부 지역에선 빗줄기와 함께 폭염주의보가 발령됐어요. 이렇게 전국 단위로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는 ‘도깨비 장마’ 현상이 나타나면서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날씨를 예측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예보가 불확실한 탓에 폭염이나 폭우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 일도 잦아졌고요. 독자 여러분도 집중 호우, 고온다습한 날씨에 철저히 대비하시기를 바라면서 오늘의 미션100 시작해 보겠습니다.
전 세계 잠식한 이상기후
과거와 다른 패턴의 이상기후 탓에 골머리를 앓는 건 우리나라만이 아닙니다. 최근 미국과 남미 사이에 있는 카리브해에서 초대형 허리케인 ‘베릴’이 나타났어요.베릴은 시속 252㎞ 이상의 풍속을 기록하면서 ‘5등급’ 허리케인으로 격상됐습니다. 그동안 4등급 이상의 위력적인 허리케인은 해수가 뜨겁게 달궈진 9월 이후에나 발생했어요.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서 예년보다 3개월이나 앞선 6월에 5등급 허리케인이 출현하게 됐죠.
40도를 넘는 폭염에 프랑스 정부는 ‘에어컨 없는 올림픽’이라는 원칙을 포기했다. 사진: 2024 파리 올림픽 대회 홈페이지
인도와 중국에서도 폭우로 인한 피해가 잇따르고 있어요. 인도 아삼주 북동부에서는 산사태와 홍수로 12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중국에선 대형 호수의 제방이 무너져 육지의 일부가 물에 잠겼고요. 반면 유럽은 폭염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올림픽 개최국 프랑스는 계속되는 폭염에 ‘에어컨 없는 올림픽’이란 원칙을 포기했고,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폭염으로 인한 대형 산불로 고역을 치르고 있어요.
날씨가 부르는 인플레이션
이상기후는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날씨가 물가 상승을 유발하는 ‘기후 인플레이션’ 현상이 대표적이에요. 기후 변화가 극심한 인도에선 차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차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고 있어요. 세계 2위의 커피 원두 생산국인 베트남에서는 1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발생했는데, 이 때문에 국제 원두 가격(1톤당 4141달러 60센트•약 570만원) 은 지난해 대비 50.9% 상승했습니다.
기후 변화가 지속할 경우 국제 경제도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한다. 출처: UN 세계 경제 전망 보고서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 변화에 국제연합(UN)은 급기야 이런 경고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죠. “기후 변화를 해결하지 못하면 2100년까지 세계 총생산(GDP)의 약 10%가 감소하고, 평균 소득은 23% 줄어드는 등 경제 위기를 맞을 것이다.”
에코사이드와 인권 붕괴
지금까지는 이상기후로 인한 ‘결과’만 살펴봤잖아요. 그런데 이상기후가 나타나게 된 원인을 따져보면 문제는 더 심각해요. 우리가 익히 아는 대로 온실가스, 화학연료, 독성물질, 플라스틱, 각종 산업 폐기물과 생활 쓰레기 모두가 기후 변화를 초래한 주범입니다.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환경 파괴 요소들에 기후학자들은 “인류 사회가 ‘에코사이드(ecocide)’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탄식하고 있어요. 에코사이드란 집단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에서 유래된 용어예요. 지구 생태계에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악영향을 불러오는 행위를 뜻하죠.
2015년 페루 우아라스 지역의 팔카코차 호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인근 지역의 물난리 위험이 커졌다. 사진: AP통신
국내 인권학자 조효제는 에코사이드가 인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1991년 우리나라 경북 구미에서 한 기업이 낙동강 유역에 독극물 ‘페놀’을 유출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수백만 명의 주민들이 식수원으로 쓰인 낙동강을 수돗물로 마셨고, 임산부가 유산을 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죠. 2015년 남미 페루의 도시 우아라스에선 호수에 있던 빙하가 녹아서 인근 지역이 수해 위험 구역이 됐는데, 전력 회사에서 배출한 온실가스가 원인이었다고 해요. 유해 물질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모른 척’ 외면한 기업들 때문에 지역 주민은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잃은 셈이죠.
국가가 에코사이드 앞장설 건가요?
국제 사회는 기후 변화를 가속화하는 에코사이드를 ‘기후범죄’로 규정하고, 이를 법제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이런 국제 사회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한국은 세계에서 13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2022년 기준• 6억7000만mt)한 나라입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친환경에 역행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 어업 규제 폐지,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축소 등 환경 보호보다는 개발 사업에 편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이죠.
정부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을 통해
산업계의 온실가스 배출 부담을 줄여줬다. 출처: YTN 사이언스 투데이
기후 변화 위기에 대응하는 출발점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사실을 정부도 모르지 않을 거예요. 친환경에 반하는 정책이 ‘에코사이드’로 향하는 한 걸음이 될 수 있다는 점, 정부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참고문헌
MBN. 24-07-10. [폭우·폭염 반복 도깨비 장마…“기후 변화로 예측 어려워”]. 연합뉴스. 24-07-10. [“커피 가격, 재배지역 이상기후로 내년 중반까지 상승 전망”]. 뉴시스. 24-07-09. [태풍과 홍수, 폭염 극단적 이상기후에 몸살 앓는 전 세계]. 농민신문. 24-07-03. [카리브해 초대형 허리케인 발생… 때 이른 불청객에 북·중미 ‘초긴장’]. 미디어오늘. 24-06-27. [기후위기는 왜 인권의 문제일까?]. 법률신문. 23-12-21. [끝나지 않은 전쟁과 에코사이드]. 강홍구. 2024. [윤석열 대통령의 2년, 환경을 포기한 정부]. 환경운동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