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이익 더 줄입시다, 그럽시다” 난리 난 실손보험
미션98🚩 소비자 혜택 축소하는 실손보험 개혁을 멈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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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 집을 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라 해도, 열심히 땅을 개간하고 하나하나 벽돌을 쌓다 보면 비옥하고 안락한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언제 발생할지 모를 각종 사고와 질병으로부터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집을 세우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매달 월급의 일부를 떼어내 집 짓는 비용으로 ‘투자’를 하고 있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애써 건물을 올리고 있는데, 갑자기 나라에서 사람을 보내 “집이 너무 호화롭다”며 재건축을 하자고 합니다. 지금보다 훨씬 좁고, 작게요. 하루아침에 내가 지은 집이 위태로워진 이 상황,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가입자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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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뜨고 코 베는 실손보험 개혁
■ 실손보험이 뭐냐 하면요
실손보험은 사고나 질병으로 인해 피보험자가 실제로 부담한 의료비의 일부를 보상해주는 보험입니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경제적 측면에서 의료비 지출이란 ‘실질적 손해’가 발생할 때를 대비해 보험회사와 계약을 맺는데요. 계약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내가 다달이 보험료를 낼게. 이 돈을 잘 모아뒀다가 나중에 나한테 사고나 질환이 생기면 의료비로 되돌려줘.”
가입자 입장에선 내 돈으로 미리 의료비를 모아두는 셈이니까, 돌려받는 금액이 많을수록 보험을 든 보람이 있을 겁니다. 보험회사는 가입자의 보험료로 회사를 운영하니 만큼, 가입자에게 주는 혜택은 당연히 커야 하겠죠.
■ 실손보험 혜택이 점점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1999년 1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한 후 2009년 2세대→2017년 3세대→2021년 4세대로 이어지는 동안 가입자 혜택은 줄어들기만 했어요. 예를 들어, 1∙2세대 실손보험은 가입자의 의료비 부담률이 0~20%였어요. 의료비 전액을 보험사가 보장하거나 적어도 80%는 책임졌다는 뜻이죠. 이에 반해 3∙4세대 가입자의 자기부담률은 10~30%로 높아졌어요.
어디 이뿐인가요?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는 의료비를 ‘급여’와 ‘비급여’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급여 항목은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에서 의료비를 보태주는 반면, 비급여 항목은 100% 국민 개인이 비용을 부담해야 하죠. 그래서 민간 실손보험에 가입하면서 “비급여 의료비도 지원해줘야 해!”라는 약속을 받는 거예요. 그런데 비급여 혜택을 비교해봐도 초기 실손보험이 훨씬 좋아요. 1∙2세대는 비급여 의료비를 상당 부분 보장하는데, 3∙4세대는 비급여 보장 항목의 수도 적고 보장 금액도 적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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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실손보험 개혁은 가입자의 이익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출처: 비즈워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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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세대’ 실손보험은 혜택을 더 줄인대요
이런 상황에서 2025년 1월 9일, 정부가 실손보험을 손보겠다며 정책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정부가 구상한 ‘5세대’ 실손보험의 핵심은 ▲비급여 항목의 급여 전환 ▲병행진료 급여 제한 ▲비중중∙비급여 보장 제한이에요. 국가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급여 항목과 달리 비급여는 의료기관의 자율로 가격을 정합니다. 정부는 일선 병원들이 비급여 항목의 가격을 부풀려 정해놓고 ‘과잉 진료’를 해서 환자들의 비급여 치료를 유도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의사가 권유한 비급여 진료가 실손보험으로 보장이 되는 항목이라면 환자들도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가령, 10만원 중 7만원을 보험회사에서 보장해주면 내가 내는 금액은 3만원 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정부는 이런 식의 ‘비급여 장사’가 환자들의 의료쇼핑을 초래해서 보험금을 남용하게 만든다고 봤어요. 그래서 비급여 항목 일부를 급여로 전환해 정부가 직접 가격을 관리해서 악용을 막겠다는 거예요. 병행진료 급여를 제한하는 이유도 같아요. 급여 항목 진료를 받을 때 비급여 항목을 끼워 넣어 ‘급여 보장용 실손보험’을 청구하는 ‘택갈이’를 차단한다는 취지예요. 여기에 더해 중증 환자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비중증 일반 환자의 보험 보장을 축소하겠다는 방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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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밝힌 5세대 실손보험 개편 계획에 따르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실질적인 혜택은 지금보다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출처: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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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보험 체계를 개편하는 ‘이유’인데…
■ 그러니까 일반 환자 혜택을 왜 줄이냐고요
정부가 실손보험을 개편하려는 이유, 언뜻 봐선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필요하지 않은 진료를 ‘이익을 많이 남길 수 있어서(병원)’ ‘진료비를 조금 내도 되니까(환자)’ 남용하는 건 전체 실손보험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죠. 과잉 진료가 만연한 일부 비급여 항목을 정비하는 건 공감할 만한 대목입니다.
문제는 비급여 과잉 진료를 받는 환자가 ‘소수’에 해당한다는 거예요. 업계 추산에 따르면, 5%도 안 되는 가입자가 전체 보험금의 60% 이상을 타가는 실정이거든요. 반면 보험료를 내놓고도 한 번도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은 가입자는 무려 65%에 달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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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실손보험금 지급 현황을 살펴보면, 소수의 가입자가 전체 보험금의 60% 이상을 타가고 있었다. 출처: 머니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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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정부가 중증질환 보장 확대를 위한 뾰족한 수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정부는 실손보험 비급여 특약에 넣을 수 있는 중증질환 대상을 ‘산정특례 등록자’로 한정한다고 해요. 하지만 산정특례제도가 모든 중증질환을 포괄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산정특례 미포함 환자들은 5세대 실손보험에서도 값비싼 진료비를 알아서 부담해야 하죠.
■실손보험 개혁, 누구 좋으라고 하는 거예요?
이쯤 되면 의문이 생깁니다. 실손보험은 가입자의 혜택을 위해 존재하는데, 정부 개혁은 왜 거꾸로 향하는 걸까요? 실손보험 개편으로 이익을 얻는 건 누구일까요? 답은 자명합니다. 바로 실손보험을 운영하는 보험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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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보험회사들은 "손해를 보면서 실손보험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한다. 출처: 보험정보 빅데이터 플랫폼 BIG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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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과손해율은 보험사에 발생한 손해액 대비 보험료 수익의 비율을 뜻한다. 합산비율은 손해액에 보험사 사업비를 포함한 총 비용에서 보험료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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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실손보험 운영사들의 최근 6년간 평균 손해율은 119%(합산비율 기준)입니다. 손해율이 100%를 넘는다는 것은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운영으로 적자를 보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 원인으로 꼽는 것이 바로 ‘비급여 과잉진료’입니다. 정부가 뜯어 고치겠다고 나선 부분이기도 하죠. “실손보험의 방만한 운영을 개선해서 무분별하게 새는 돈을 막겠다”는 건데, 사실 경영 실적을 개선하는 일은 보험사들의 몫입니다. 이들은 어디까지나 민간 기업이기 때문이에요. 보험이 아무리 공적 기능을 한다고 해도, 정부가 직접 나서 사기업의 손실을 해결해주려고 하는 태도는 쉽게 이해하기 힘듭니다. 보험 산업의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고 해도, 지금처럼 보험사의 손실 보호에 초점을 맞춰 가입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은 옳지 않죠.
■ 법까지 바꿔서 ‘5세대’로 강제 전환을 한다?
보험사들은 실손보험의 초기 모델인 1∙2세대에서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크게 우려된다고 주장해요. 비급여 항목 보장에 제약을 걸어둔 3∙4세대와 달리 1세대는 무제한 비급여 치료를 받을 수 있고, 2세대도 통원 적용 횟수가 많은 편이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1∙2세대 실손보험은 재계약 주기가 없습니다. 한 번 가입하면 계약 만기까지 개정 약관을 적용할 수 없어요. 보험사는 ‘무한 혜택’에 가까운 1∙2세대 실손보험을 정리하고 싶은데, 계약을 해지할 근거가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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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법을 바꿔서라도 초기 실손보험 가입자들이 5세대 실손보험으로 전환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출처: 보건복지부·오피니언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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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정부가 계획한 것이 ‘계약 재매입’입니다.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고 계약을 해지하는 거예요. 그런데 기존 1∙2세대 가입자가 보장 혜택이 줄어들 게 뻔한 5세대 실손보험으로 옮겨갈 확률은 낮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강구한 방법은 법 개정입니다. 정부는 보험 관련법을 고쳐서라도 “초기 실손보험의 약관 변경이 가능하도록 검토하겠다”고 했어요. ‘(초기) 가입자의 이익 침해는 최소화하겠다’는 전제 조건을 달았지만, 그럼에도 부정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정부가 실손보험 개편으로 구제하려는 건 보험 가입자인 일반 국민이 아닌 민간 보험회사라는 사실 말입니다.
보험의 목적이 무엇인지 잊었나요?
■ 이런 식으로 손대면 보험에 가입하는 의미 없습니다
계약 재매입 대상인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는 1582만명으로 전체 가입자의 44%에 이릅니다. 이중에서 비급여 과잉 진료를 받는 가입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요? 더구나 1∙2세대 가입자는 가입 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가파른 보험료 인상을 수용해왔습니다. 이들은 그저 보험사가 직접 설계해서 직접 판매한 상품에 일찍 가입을 했고, 성실하게 보험료를 납부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막상 보험이 필요한 나이에 이르니 나라에서 보험 보장을 받을 권리를 강제로 뺏았겠다고 하는 상황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국민의 사보험에 개입하느냐”는 가입자들의 비판은 당연하죠.
■보험의 목적은 국민의료비 절감… 개혁의 중심에 가입자 있어야
정부의 계획을 두고 전문가들은 “보험 가입자의 이익을 해치는 방향”이라며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동시에 가입자의 보장 혜택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의료비 보장은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되는 중대 사안입니다. 실손보험 개편이 보험회사에만 좋은 일이 되지 않기 위해 정부의 고민이 필요한 이유예요. 미션100에서 환우회, 시민단체 등 각계 여론 수렴 기관들의 의견을 종합해 실손보험 개혁의 방향성을 정리해봤습니다. 부디 5세대 실손보험이 ‘졸속’으로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주 뉴스레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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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급여 진료 실태 파악 시스템 마련
-병원마다 다른 비급여 항목 가격 공개 활성화, 비급여 진료 보고 제도 확대
⦁ 비급여 항목의 사후 관리 강화
-비급여 항목 유효성∙안전성 평가 이후 남용 사례 적발 강화
⦁ 보험 급여 지급 기준의 명확화
-급여 제한 항목 및 제한 사유 구체화
⦁ 실손보험 운영사의 심사 체계 정비 -가입자 혜택 축소가 아닌, 보험회사의 부실한 심사 체계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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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비즈워치. 2025-01-15. [[실손보험 논란]벌써 4번째… ‘비급여’ 왜 지목하나]. 뉴스핌. 2025-01-15. [100만원 받고 실손 갈아타라고? 정부·보험·소비자 ‘동상이몽’]. 오피니언뉴스. 2025-01-15. [실손 ‘2009년~2017년 3월’ 가입자, 자기부담율 높인 ‘강제전환’ 가능한가?... 전문가 “위헌 판결 나올것”]. 이데일리. 2025-01-09. [1·2세대 실손 재매입 추진… 효과 없으면 법으로 5세대 전환]. 조선일보. 2025-01-04. [[단독] 실손보험 있어도… 도수 치료 본인 부담 90%로 상향]. 머니투데이. 2024-11-12. [“남들 4600만원 타갈때 난 0원”… 이런 실손보험 가입자 65%]. 보험정보 빅데이터 플랫폼 BIGIN. 2025. [50대 주요 보험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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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70까지는 메일리에 아카이빙 되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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