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그 이후 우리가 가야 할 길
미션96🚩 재난참사 현장의 반복되는 문제를 끊어내라 |
|
|
잔인하고, 지난한 한 해였습니다. 화가 나고, 힘겹고 아픈 소식들이 가득했던 2024년을 겨우 지나 2025년 새해를 맞은 지 어느덧 일주일 째가 되어 가고 있는데요.
새해 첫 미션 100 뉴스레터는 지난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온 나라를 슬픔에 잠기게 했던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관해 다뤄보려고 합니다. 유가족의 슬픔을 섣불리 들춰내거나 사고 경위를 함부로 추론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우리나라 정부의 재난참사 대응과 언론 보도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결 방안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그에 앞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분들을 추모하며 유가족분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
|
지난 12월 29일, 태국 방콕을 떠나 무안공항으로 돌아오던 제주항공 2216편 여객기가 착륙 후 활주로에서 공항 구조물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충돌 직후 여객기는 폭발과 함께 화염에 휩싸였고, 꼬리 일부분만 남긴 채 전소됐습니요. 아직까지 사고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정확한 원인 규명을 위해선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합니다.
재난참사 대응 문제점① 언론 보도
그럼에도 우리나라 언론은 앞다퉈 사고 원인을 추측하는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의 견해에 추론을 덧붙여, ‘사실’인지 아닌지 불확실한 정보를 만들어내고 있는 거죠. 이러한 언론의 보도 행태는 국가적 재난과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지탄을 받았습니다. 언론의 성급한 보도가사고 희생자, 유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각 언론사와 기자가 따라야 할 재난보도 준칙이 있습니다. ‘무리한 보도 경쟁을 자제하고 비윤리적 취재를 금지하며, 유언비어를 방지하고 선정적 보도를 지양할 것’. 뉴스의 시청자이며 독자인 우리가 듣기에도 무척 상식적인 원칙입니다. 그러나 이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에서도 이러한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사고 원인과 수습 관련 보도에선 섣부른 예단이 튀어나왔고, 단편적 추정을 과도하게 부각하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을 호도한 기사들이 쏟아졌어요.
더욱 뼈아픈 점은, 수십년간 끊이지 않았던 재난참사에도 언론이 제자리걸음하는 사이 시민의식은 더없이 성숙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에서는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현장기자들에게 재난보도 준칙을 안내하고, 질서 있는 취재를 요청했다고 해요. 그래서 유가족을 향한무례한 질문이나 무분별한 접근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언론이 아닌 유가족이 앞장서 현장의 취재 윤리를 수호하려 했다는 점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언론이 방기한 책임을 시민사회가 대신 지워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
|
|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붙어 있는 재난보도 준칙 준수 요청문. 출처: 독립저널리스트 미디어몽구(김정환) 제공. |
|
|
재난참사 대응 문제점② 유가족 배제하는 현장
언론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수차례 재난참사 사고를 경험했음에도 우리 사회는 악습과 폐해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희생자 유가족이 사건 수습 과정에서 배제되고, 악의가 담긴 세간의 말과 시선에 불필요한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일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번 제주항공 사고에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고 발행 후 현장에서는 유가족 지원을 위한 준비나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희생자 신원은 어떻게 확인해야 할지, 사고가 어떻게 수습이 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으니 유가족은 더욱 애가 탈 수밖에 없습니다. 참사 당일 공항에서 유가족이 탑승자(희생자) 명단을 받지 못해, 기자들에게 명단 확인을 부탁한 일도 있었다고 해요.
결국 유가족들이 직접 나서 정보 공유를 요청한 뒤에야 공항 전광판을 통해 기본적인 수습 현황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냉동 컨테이너를 투입한 것도 “야외 격납고에 있는 임시 안치소에서는 주검이 부패할 수 있다”는 유가족의 우려에 따른 것이었고요. 사고 초기 유가족들의 절박한 요청 중 하나였던 사고현장 방문도 유가족 요구가 빗발친 다음에서야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허가’ 됐다고 합니다. 국제사회에서 항공기 사고 피해자의 현장 방문은 당연한 권리로 규정하는데 말이에요. 이렇듯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정보 제공은 사고 초기 유가족이 정부와 제주항공을 불신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
|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은 현장을 떠나며 사고 수습·조사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출처: SBS 8뉴스 유튜브 캡처. |
|
|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가족의 차분한 대응에 당국이 보조를 맞추며, 참사 희생자의 시신을 유가족에게 모두 인도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박한신 유가족 측 대표는 현장을 떠나며 “이런 모든 분들이 처음에 욕도 많이 먹고,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며 유가족을 대표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어요.
해결 방안 모색: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산더미처럼 남아 있습니다. 지난 1월 4일 경복궁역에서 열린 시민집회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자리이기기도 했는데요. 이날 집회를 공동주최한 단체들의 목록을 통해 우리는 떨쳐지지 않는 고통의 역사를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습니다. |
|
|
재난참사피해자연대 -삼풍백화점 붕괴참사,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참사, 인천인현동 화재참사, 2ㆍ18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가습기살균제 참사, 7ㆍ18 공주사대부고 병영체험학습참사, 4ㆍ16 세월호 참사,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 6ㆍ9 광주학동참사
개별 단체 산재피해자가족네트워크 다시는/10ㆍ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오송참사 유가족협의회/오송참사 생존자협의회/아리셀 산재 피해 가족협의회, 생명안전동행/생명안전 시민넷, 4ㆍ16 연대/10ㆍ29 이태원참사 시민대책회의/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
|
|
더이상의 비극이 이어지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는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까요? 언론과 정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
|
|
Ⅰ. 언론
먼저, 재난 참사를 보도하는 언론의 의무부터 재정립해야 합니다. 언론은 사고 당시에만 들끓고 마는 게 아니라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책, 희생자∙유가족 회복 지원까지 끈질기게 추적해야 합니다. 또한, 재난 발생 시 알아야 할 필수정보를 전달하는 핵심적인 매개 역할을 수행하되, 허위 정보의 확산을 촉진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여부가 불명확한 정보, 사실관계가 틀린 오보, 자극적 보도를 위한 거짓 정보의 전파를 차단해야 합니다.
비영리 공익단체인 ‘저널리스트를 위한 국제센터(ICFJ)’가 제시하는 보도준칙, 글로벌 통신사 AP뉴스의 재난 보도 교육 내용은 우리 언론이 마땅히 참고할 만한 교본입니다. 두 기관의 재난 보도 원칙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
|
[취재 단계]
① 가능한 가장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어떤 것이 밝혀졌고, 어떤 것이 밝혀지지 않는지를 말해야 한다.
② 추측성 보도를 금해야 한다. 모든 기사와 정보는 출처를 명기해야 하고 신뢰할 수 있는 출 처여야 한다.
③ 맥락을 제공해야 한다.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지나친 단순화나 축약을 삼가야 한다.
④ 인명 구조 활동을 방해하는 취재행위나 인터뷰는 어떠한 경우도 용납할 수 없다.
⑤ 사고 상황이나 목격담을 듣기 위한 목적이라도 부상당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인터뷰 해서는 안 된다.
⑥ 자극적이고 비참한 사고현장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금지되어야 한다.
⑦ 희생자나 부상자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은 초상권과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는 사 실을 주지한다.
⑧ 사상자나 생존자들, 가족들에 관한 가십성 기사는 사고의 본질을 흐린다는 점을 명심한다.
⑨ 사고 원인 등과 같은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재난대책 공식기구의 책임자나 대변인을 통해 야 한다.
⑩ 언론사는 재난보도 취재에 대한 매뉴얼을 평상시 준비하고 이에 근거하여 취재와 보도를 해야 한다.
⑪ 재난뉴스를 취재하는 기자는 재난사고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충분히 갖춘 사람이어야 한 다.
⑫ 언론사 내에는 재난보도를 전담하는 전문팀이 상설화되어 있어야 한다.
|
|
|
|
[사후 단계]
① 관련 서류 및 기록 등을 조사해야 한다. 재난이나 사고의 초기 몇 시간 동안은 업데이트된 뉴스가 중요할 수 있으나 그 이후 단계에서는 재난의 원인과 결과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게 된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재난에 대한 공문서나 기록을 찾아야 한다.
② 스토리를 계속 업데이트하고 추적해야 한다. 피해 정도나 물적 손해 등 사고의 진전에 따른 변화를 추적해야 한다.
③ 재난방지 대책과 예방 등에 대해 정밀보도를 해야 한다. 정부나 지자체는 재난에 대비해 어느 정도의 준비를 해왔는지, 유사한 과거의 재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정밀한 조사를 해야 한다.
④ 재난의 패턴을 조사한다. 재난으로 인한 피해 정도를 정밀히 조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어떤 시설이나 부분은 더 많이 또는 상대적으로 적게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비교 분석과 제시가 가능하다.
⑤ 향후 예방과 미래의 준비사항에 대해 보도한다. 유사한 재난발생 시 대피방법과 예방법, 비상전화번호 등에 대해 안내한다. |
|
|
|
Ⅱ. 정부
정부는 반드시 항공 사고 수습ㆍ처리와 관련한 국제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권고하는 ‘항공기사고 희생자 및 유족 지원 관련 지침(이하 유족지원 지침)’이 대표적입니다. 이 지침에는 ▲사고 사실 고지 ▲사고 조사 ▲일상 회복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이뤄져야 할 유족 지원 방안이 담겨 있습니다. 지원 영역은 심리상담부터 재정지원, 법률지원, 사생활 보호에 이르기까지 무척 포괄적입니다. 정부, 항공사, 사고조사기관, 영사관 등 각 기관별 지원 사항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유족지원 지침은 사고 발생 직후 정보 제공의 방식을 명확히 알려줍니다. 사고 조사 관련 정보는 언론이 아닌 유가족에게 먼저 알릴 것, 유가족이 받을 수 있는 지원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정부·항공사·구호단체 등 각 기관의 역할과 연락처를 정리한 팸플릿을 제작할 것을 주문합니다.
유족지원 지침에서는 투명한 정보 공유를 중요시합니다. “연락이 닿은 유가족은 즉각 유가족 지원 절차의 다음 단계에 대한 정보를 받아야 한다”거나 “지속적인 정보 흐름의 제공은 유가족 지원 프로그램의 기본”이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합니다. 지침에서는 사고현장 방문 계획, 긴급 재정지원, 신원확인과 유해반환, 사망증명서, 유품 반환, 추모식 등을 유가족의 ‘즉각적 관심사항'으로 꼽습니다. 이는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들이 사고 발생 뒤 정부에 요구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정부의 선제적 대응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뜻입니다.
|
|
|
[국제민간항공기구 유족지원 지침 중 일부 내용]
|
|
|
① 사고 사실 고지-사고 조사-일상 회복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유가족을 지원한다.
② 심리상담, 재정지원, 법률지원, 사생활 보호 등 포괄적 영역에서 유가족을 지원한다.
③ 유가족이 지원을 원활하게 받을 수 있도록 각 기관의 역할과 연락처를 담은 팸플릿을 제작 한다.
④ 사고 관련 정보는 유가족이 가장 먼저 받아볼 수 있어야 한다.
⑤ 지속적인 정보 흐름의 제공은 유가족 지원의 기본 사항이다.
⑥ 사고 현장 방문은 애도 과정의 일환으로 유가족의 당연한 권리다. 방문 전 유가족에게 무 엇을 보고 들으며, 어떤 냄새를 맡게 될지 미리 브리핑 해야 한다. |
|
|
우리나라는 1952년부터 ICAO에 속해 있지만, 유족 지원 절차를 명문화한 법령은커녕 매뉴얼조차 없습니다. 2023년 CAO 기준에 맞춘 유족 지원 지침을 만들기 위해 정부 용역을 발주한 게 전부예요.
반면 해외 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재난참사 피해자를 위한 매뉴얼과 지원 시스템을 체계화했습니다. 대표적인 국가로 프랑스를 꼽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중대 재난이 발생하면 피해자 및 가족을 위한 ‘가족접수센터(CAF)’를 개설합니다. 재난 피해 가능성이 있는 가족을 찾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신고를 하면, CAF는 피해를 입은 가족 구성원의 현황을 전달하죠. 피해를 입은 가족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사 기관에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며, 남은 가족들에게 의료∙심리상담 서비스도 제공합니다.
|
|
|
프랑스의 재난대응체계. 출처: 한국행정연구원. |
|
|
정부 차원에서는 내무부의 ‘시민안전 및 위기관리 총국’이 재난 피해 수습을 총괄하고, ‘시민안전본부’가 피해자 지원 관련 업무를 담당합니다. 특히나 주목할 부분은 재난 피해자 지원 업무에 집중하는 ‘피해자 지원 전담 국무차관’이 따로 있다는 점이에요. 피해자 지원 전담 국무차관은 2015년 파리 테러 사건 이후 총리 직속으로 설치한 직위입니다. 재난 피해자를 위한 공공 정보와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범부처 협의체의 중심 역할을 하죠.
이에 더해 프랑스 정부는 2017년 법무부 소속 ‘범부처 피해자 지원 대표단(DIAV)’을 설립했습니다. 재난 사고 발생 시 각 부처가 피해자 지원 사업을 계획하는데, DIAV는 부처별 사업 내용을 조정하는 일을 하죠. 지역단위 피해자지원위원회(CLAV)의 활동을 모니터링하고, 피해자 지원 분야의 시민단체들과 협력하는 것도 DIAV의 몫입니다.
우리의 길은 재난참사 희생자, 피해자, 유가족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는 말합니다. “재난은 인간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유발한다. 삶의 토대를 위태롭게 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으며,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재난에 대한 모든 대응은 인간의 존엄과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 사회가 나아갈 곳은 재난참사 희생자, 피해자, 유가족의 명예와 일상이 회복되는 길입니다. 언론과 정부가 따라야 할 길이기도 합니다. 재난을 직접 겪은 후, 재난참사에 가족을 떠나보낸 후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의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 지금도 그 목소리는 가혹하고 냉엄한 현실을 뚫고 명징하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
|
|
참고문헌
한겨레. 2025-01-01. [‘즉각’ 필요 내용 적힌 국제기준 있는데… 주먹구구 참사 피해자 지원 여전]. 미디어오늘. 2024-12-31.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족들이 만든 현장 취재 윤리]. 미디어오늘. 2024-12-31. [언론, 12·3 이후는 달라야 한다]. 류현숙. 2024. [해외 주요국 재난피해자 지원 민관 협력 체계]. 4·16연대. 2024. [재난 피해자의 알권리·참여권 실현을 위한 입법 및 정책 개선 방안]. 한국기자협회. 2024. [재난보도준칙]. 유승관. 2014. [외국의 재난보도 기준 및 보도사례].
|
|
|
|
미션70까지는 메일리에 아카이빙 되어있어요
지난 레터 읽어보기 |
|
|
|